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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리뷰

[안톤 체호프/어느 관리의 죽음(Death of a Clerk)]

ethos : "톨스토이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단편 작가"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는 19세기 러시아 문단에 등장하여 현재까지 전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가이다. 셰익스피어 이래로 가장 많이 공연된 극작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연극계에서도 그의 작품은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다. 그의 극문학이 이러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인물 간의 대화와 공간의 분위기를 절묘하게 다룰 줄 아는 작가임을 증명한다. 

 

이번에 소개할 '어느 관리의 죽음(Death of a Clerk)'은 이러한 안톤 체호프 입문서로 적절한 작품이다. 체호프는 간결하고 단호한 문체로 모순과 부조리, 혹은 아름다움을 다루기를 즐겼다. 6쪽이 채 되지 않는 '어느 관리의 죽음'은 그의 소설이 가진 여러 특성 중 그 분량만큼이나 간결함이 돋보이는 문학이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인 그리고…… 죽었다.’는 간결하고 단호한 어조로 독자들에게 비극을 전달한다. 이 결말이 주는 당혹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독자는 체호프의 작품을 더 읽을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pathos : "부조리에서 오는 당혹감"

 

'어느 관리의 죽음'의 결말이 준 당혹감을 기억한다. 주인공 체르뱌코프의 죽음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찾아온다. 이 결말에 대해 혹자는 너무 갑작스럽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의사이기도 한 안톤 체호프가 봐온 죽음은 오히려 이처럼 급사의 형태가 자연스러운 모습인 것으로 보인다(실제로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이러한 형태의 죽음은 자주 소재로 쓰였다. '티푸스'가 그 대표적인 예시이다.). 더불어 이 결말에서 중요한 것은 독자가 느끼는 당혹감보다도 그 당혹감이 어디서 왔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의 당황스러움은 체르뱌코프가 소위 말하는 죽을 만한 사건이 아니라 재채기라는 사소한 실수로 시작하여 죽음에 이르렀다는 삶의 부조리함에서 오는 것이다. 체호프는 이 부조리함을 사회적인 차원의 부조리함과 엮어서 이야기 하는데 관료주의에서 발생하는 부조리가 바로 그것이다. 소설 속에서 체르뱌코프의 행동은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지만 그로 하여금 그처럼 어리석은 행동을 하도록 한 것은 상하관계가 확실한 관료주의 특성이다. 관료주의는 사람들에게 무의식 중에 계급적인 인식을 가지게 만들고 그 인식을 바탕으로 행동하도록 부추긴다. 체르뱌코프가 장군을 오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사죄의 편지를 쓰려고 하고 사죄의 편지를 쓰려고 하면서도 무엇을 써야 좋을지 알지 못했던 것은 본인도 자신의 잘못을 모르지만 관료주의 속에서 위의 직급의 사람에게 잘보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강박적으로 사과에 매달린 것이다.

 

 

logos :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시선"

 

제목이 '어느 관리의 죽음'이라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 제목은 체르뱌코프의 죽음이 단순히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관료주의를 견디지 못한 관리의 죽음임을 암시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체르뱌코프는 관복을 입은 채로 죽는다. 관리인 상태로 죽은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은 부조리에서, 관료주의의 부조리함에서 찾아왔다. 즉, 관료주의는 이미 병들었으며 그 속에서 하급 관리들은 죽음의 바로 옆에서 심신미약의 상태로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체호프는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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