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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리뷰

[프리드리히 니체/밤의 비밀]

ethos : "철학자이자 문헌학자이자 음악가이자 시인"

온 세상이 잠든 어젯밤
바람이 한숨을 내쉬며
골목길을 내달릴 때
베개도, 아편도, 다른 때는 깊은 잠을 이루게 해주던ㅡ
양심의 편안함도
내게 휴식을 주지 못했다.

결국 잠자리를 박차고
바닷가로 달려갔다.
밝은 달빛과 부드러운 대기.
따스한 모래 위에서 마주친
사람과 나룻배.
목동과 양, 둘 다 졸음에 겨워
졸음에 겨워 나룻배는 육지에 부딪혔다.

한 시간, 아마도 두 시간,
아니면 일 년이었을까?
갑자기 감각과 생각이 모두
영원한 하나에 빠져들어
끝없는 심연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는 사라져버렸다!

아침이 오고, 검은 심연 위에 우뚝 선
나룻배의 휴식, 그리고 또 휴식
무슨 일이었지? 그렇게 외치자.
수백의 사람이 곧 외쳤다ㅡ무엇이었지? 유혈? 피였나?
아무 일도 없었어! 우리는 잠을 잤지.
잠을 잤었지 모두가 ㅡ아, 그러면 됐어! 그래 됐어!

ㅡ밤의 비밀, 프리드리히 니체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는 철학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지금까지도 많은 대학 교양과 철학 전공 수업에서 니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실제로 '힘에의 의지', '영원회귀', 위버멘쉬(초인)'와 같은 그의 철학적 개념은 현대 인문학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그는 사실 예술적인 능력도 뛰어났는데 한 예로 그는 음악적인 재능도 상당해서 작곡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철학적 사유능력과 음악 재능으로 쓴 대표적인 저서가 바로 '비극의 탄생'이다. '비극의 탄생'은 니체 특유의 포착력으로 당시 독일 사회의 문제점을 음악적인 차원에서 해결책을 제시한 명저이다. 이처럼 그의 예술적 능력은 천재적이었는데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그 높은 문학성을 인정 받은 것을 보면 그의 능력의 크기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니체는 말년에 건강 악화와 정신병으로 긴 글을 쓰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로 짧은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몇 편의 시를 남겼는데 이번에 소개할 '밤의 비밀'이 바로 그러한 시들 중 하나이다. 이 짧은 작품에서도 그의 사상과 문학성을 엿볼 수 있다.

pathos : "형식, 감각, 생각에 대한 허무주의적 태도"

'밤의 비밀'에서 의미심장한 부분은 단연 마지막 두 장면이다. "감각과 생각이/영원한 하나에 빠져들어/심연이 입을' 열었지만 그것은 사라져버렸고 사람들은 그것을 잠을 잔 것으로 치환해버린다. 흔히 니체가 형이상학을 해체하였다고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는 칸트식의 형이상학, 도덕형이상학, 형식 중심의 형이상학을 해체하고 전통 형이상학으로 회귀한 것이다. 영원한 하나, 즉 일자를 놓지 않고 언급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결국 일자도, 심연도 인식하지 못한다. 이것은 그들의 낮의 존재들로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존재들은 감각으로 세상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정확하기는 하지만 올바르지는 않다. 일자, 이데아, 심연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형식, 감각, 생각을 탈피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낮의 존재들이기 때문에, 빛의 반사로 사물을 인식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끝내 그것을 알 수 없는 존재이다. '밤의 비밀'이라는 제목은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logos : "형이상학자의 망치"

니체가 형식, 감각, 생각에 대해 허무주의적 태도를 취한 이유는 그것을 통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직관을 통해서 정확하지 않게나마 존재함을 알 수 있는데 1연의 잠 못 이루는 화자의 모습은 이러한 직관의 상황을 문학적으로 서술한 장면이다. 다만 화자 역시 현실의 존재임을, 심연이 아닌 육지의 존재임을 2연에서 그가 감각하고 인지하는 것들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이것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1행에서처럼 '온 세상이 잠'들어야 한다. 이것은 곧 우리의 세상을 해체해야 함을 말한다. 물론 심연을 정확하게 서술할 수는 없지만 그것에 접근하기 위해서라도 니체는 형이상학의 망치를 들고자 한 것이다. '밤의 비밀'은 이러한 측면에서 니체의 '철학은 망치로 한다'는 선언의 근거를 소개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