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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리뷰

[기형도/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ethos : "비극과 고통, 그리고 희망의 시인"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다. 여섯 개의 줄이 모두 끊어져 나는 오래전부터 그 기타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때 나의 슬픔과 격정들을 오선지 위로 데리고 가 부드러운 음자리로 배열해주던’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가끔씩 어둡고 텅 빈 방에 홀로 있을 때 그 기타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나는 경악한다. 그러나 나의 감각들은 힘 센 기억들을 품고 있다. 기타 소리가 멎으면 더듬더듬 나는 양초를 찾는다. 그렇다.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가끔씩 어둡고 텅 빈 희망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이상한 연주를 들으면서 어떨 때는 내 몸의 전부가 어둠 속에서 가볍게 튕겨지는 때도 있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ㅡ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기형도

 

기형도는 28세의 젊은 나이로 작은 시집 하나와 몇 편의 소설만을 남기고 사망했다. 사인조차 심장마비라는 기형도답다면 기형도다운 죽음이었다. 이 젊은 시인의 시집 하나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문학도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은 문학계에서 유일무이한 그의 위치를 확인시켜준다. 기형도의 작품은 고통 속에 있는 듯한 화자와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압권이다. 하지만 단순히 분위기 만으로 그를 위대한 시인의 반열에 오르게 한 것은 아니다. 30년 동안이나 그의 시를 읽게 만든 원동력은 그가 고통 속에 있으면서도 희망으로 노래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고통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시에는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매료될 숭고함과 아름다움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흔히 기형도의 작품을 뽑을 때 거론되는 작품은 아니지만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그가 쓰고자 했던 시의 방향과 가장 일치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pathos : "긍정과 부정의 대비를 통해 마주한 젊은 통찰"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낡은 기타를 묘사하면서 시작한다. 이 묘사를 시작으로 기타 소리, 희망, 푸른 종이까지 여러 묘사가 이어진다. 이 묘사들의 특징은 그것들이 모두 묘사하는 대상의 부정적인 부분을 먼저 언급한다는 것이다. 가령 낡은/악기’, ‘어둡고 텅 빈/희망’, ‘먼지투성이의/푸른 종이라는 시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마냥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시의 훌륭한 점은 부정적인 묘사를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그것들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만을 던지게 하지 않는 점이다. 이런 이 시의 분위기는 마지막 연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먼지투성이긴 하지만 푸른 종이 자체가 먼지를, 부정적인 무언가를 내포하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먼지와 같이 부정적인 무언가에 덮여 있다 하더라도 그것의 본질마저 바뀌는 것은 아니다.

 

 

logos : "부재하는 현존, 현존하는 부재"

 

이와 같이 기형도는 절묘한 묘사를 통해 부정적인 시어를 사용하면서도 부정적인 느낌과 긍정적인 느낌을 모두 가져왔다. 이러한 묘사는 단순히 무언가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당장 현재의 부정적인 면을 꼬집음과 동시에 본질적인 부분에서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직시하도록 해준다. 어둡고 텅 비었더라도 그것은 희망이고 희망이라도 현재 그것이 어둡고 텅 빈 방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 두 사실을 같이 언급함으로써 기형도는 단순히 현실에 대하여 회의주의나 낙관주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진실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분법이 모호해지는 그의 시 세계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그것은 기형도 시인이 현재는 존재하지 않으나 독자들에게는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의 희망도 존재하지 않으나 존재했었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에 나오는 낡은 악기가 그렇듯이 우리는 희망을 연주하며 살아간다.